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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스코] ③모두가 ‘오픈' 외칠 때 나홀로 ‘독선의 길’
‘네트워크 공룡’ 시스코시스템즈가 흔들리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직원을 대거 내보냈지만 실적 개선은 묘연하고, 특히 아시아와 신흥시장의 성과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곧 시스코코리아의 위기다. 시스코가 역경을 딛고 쇄신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체 프레임에 갇힌 채 쇠퇴할지 주목된다. <편집자 주>

[미디어잇 박상훈] 기업이 돈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독과점이다. 경쟁이 제한될 때 기업은 원하는 가격에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신제품 개발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IT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의 표준을 장악하거나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면 손쉽게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다. 이른바 ‘업체 종속(Vendor Lock-in)’이 한 번 실현되면 길게는 수십 년간 수익과 성장이 보장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제품을 구매해 쓰는 기업은 물론 파는 독과점 기업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는 비싼 비용에 형편없는 서비스와 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독점 기업은 경쟁이 없어 새로운 기술 투자에 소극적이다. 그렇게 혁신이 사라지고 기존 기술이 오히려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순간 '파괴적인 혁신’이 등장하고 독과점 기업은 위기를 맞는다. 코닥, 컴팩, IBM 등이 사라지거나 큰 위기를 겪은 이유이고, 아마존, 구글, 애플이 단기간에 급성장한 배경이다.

시스코 독주 시장의 파괴적인 기술 ‘SDN’

그렇다면 현재의 네트워크 시장을 보면 어떨까. 기존의 기술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지만, 매우 유력한 파괴적인 혁신 기술이 등장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바로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다. 


SDN이란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되는 '제어부’와 물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데이터부’를 분리해 제어부용 소프트웨어를 사용자가 자유롭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치 저렴한 서버에 리눅스를 설치해 사용하듯 네트워크 장비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x86으로 이어진 오픈 환경으로의 전환을 네트워크에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장 측면에서 SDN 열풍은 결국 서버 인프라에서 IBM에 그랬던 것처럼 업체 종속이 해체된다는 의미다. 오픈플로우(OpenFlow)와 같은 표준 제어 프로토콜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SDN 컨트롤러 전문업체 등 SDN 관련 생태계가 점점 체계를 갖춰가면서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 패킷 분석업체가 온라인 서비스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SDN을 도입한 기업이 지난해 19%에서 올해 53%로 늘어났다.

‘무늬만 SDN’ 시스코의 반 오픈 행보

SDN이 확산하면서 시장의 65%가량을 석권하고 있는 ‘네트워크 공룡’ 시스코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시스코 역시 SDN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지난해 말 내놓은 '넥서스 9000’ 스위치를 보면, SDN과 비슷한 'ACI(Application Centric Infrastructure)’ 개념이 포함돼 있다. 당시 업체는 자체 운영체제와 컨트롤러도 함께 발표했다. 

반면 오픈 환경을 얼마나 충실히 지원하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기존 스위치 제품 대부분과 호환되지 않고, 일부 고급 옵션에 반드시 자사 기술과 제품을 사용하도록 제한을 걸었기 때문이다. SDN의 가장 큰 혜택이 ‘종속 해체’임을 고려하면 결국 다시 시스코 아키텍처에 종속시키는 ‘무늬만 SDN’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쟁사인 HP의 네트워킹 담당 임원은 "시스코는 SDN으로의 이동을 하드웨어 중심의 자사 독점 기술로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스코가 이처럼 SDN에 소극적인 것은 무엇보다 시스코의 이해에 반하기 때문이다. SDN이 확산할수록 저가 장비에 서드파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어, 고가의 시스코 장비를 구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잠재적으로 자사의 수익에 위협이 될 SDN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 잇달아 감원을 시행할 만큼 최근 실적이 부진한 것도, 새로운 도전보다 기존 시장을 지키는 보수적인 기술 전략을 취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시스코는 오픈스택과 오픈데이라이트 등 개방형 표준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에서 주도하는 개방형 하드웨어 인프라 표준화 모임인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 SDN이라는 용어 대신 '하드웨어 정의 네트워킹(Hardware-Defined Networking, HDN)’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네트워크 부문이 오픈 환경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시스코의 거부감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다.

"기술적 퇴보가 더 심각한 문제"

일부에서는 SDN 뿐만 아니라 시스코의 기술력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시스코는 네트워킹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지만, 정작 새로운 네트워크 관련 기술 대부분은 스타트업과 후발주자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부문에서 시스코의 기술적 영향력이 점점 줄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실제로 큐물러스(Cumulus)는 베어메탈 스위치에 설치해 사용할 수 있는 네트워킹 전용 리눅스 운영체제로 주목받고 있고, 플러리버스(Pluribus)와 아다라(Adara)는 서버와 스위치를 조합해 가상 서비스와 물리 인프라를 연계하는 제품을 출시했다. 빅 스위치 네트웍스(Big Switch Networks)는 물리적인 네트워킹 자원과 가상 네트워킹 자원의 오케스트레이션 기술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파괴적 혁신 기술의 ‘희생양’이 된 기업을 보면 파괴적 기술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필름 카메라 시대를 풍미했다가 쓰러져 간 코닥도 디지털 카메라 분야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고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결국, 혁신성을 유지하면서 기업 고객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국내 네트워크 업체 관계자는 “최근의 시스코를 보면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직접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시스코가 과연 기술기업인지 아니면 마케팅만 잘하는 회사인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위험신호”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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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d Seed